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규 소라이 (문단 편집) == 생애 == 1666년 3월 21일 [[에도]]에서 태어났다. 하야시 슈우사이와 하야시 호코에게 학문을 배웠지만 아버지가 그만 쇼군이 되기 직전의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심기를 건드린 탓에 에도에서 추방되어 버렸다. 아버지가 에도에서 추방되자 할 수 없이 가족들은 에도를 떠나 카즈사국(오늘날의 [[치바현]] 중남부)의 혼노 마을(오늘날의 모바라시)로 이주해야 했다. 이곳에서 오규는 불경과 유교경전, 일본 고전들을 탐독했고 스스로도 이곳에서 자신의 학문적 기초가 완성되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1692년, 아버지가 사면을 받고 에도 추방령이 풀리자 다시 에도로 돌아왔다. 조죠지(増上寺) 근처에 학당을 열었지만 학생들이 별로 없어서 가난한 생활을 했고 근처 두부가게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먹을 것을 주어 연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지내던 중 쇼군 도쿠가와 츠나요시의 최측근이자 실세였던 야나기사와 요시야스가 그를 발탁해 그의 측근으로 정치 고문 겸 야나기사와 가문의 가정교사가 되었다. 그를 통해 쇼군 츠나요시와도 만나게 되었고 츠나요시의 신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츠나요시가 죽고 야나기사와도 실각하면서 그도 중앙 정계에서 멀어졌고 야나기사와 저택을 나와서 니혼바시 가야바쵸에 거처와 학당을 열었다. 이때에는 많은 제자들이 와서 소라이파라는 학파가 생성되었다고 한다. 노년인 1722년,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가 다시 그를 쇼군의 정치자문으로 삼았고 오규는 요시무네에게 추방령이 가혹하니 다른 관대한 형벌로 대체하자는 주장을 해 받아들여졌다. 1728년 63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